그녀가 있을 것 같은 교차로

글 주기철
사진 주기철

 거기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어디론가 씩씩하게 가고 있는 파란 사내와 누군가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빨간 사내가 동거하는 야릇한 공간. 빗줄기가 거세도 걸음은 멈추지 않고 햇빛이 쏟아져 내려도 기다림은 계속된다. 어디를 가느냐고 묻지도 않고 누구를 기다리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하긴, 둘이 같은 집을 쓰고 있어도 마주친 적이 없으니 묻거나 궁금할 필요도 없을 게다.
 친구 맞아?
 사실 친구인지 아닌지 조차 알 수 없다.
 같은 집을 쓰고 있다고 다 친군가?

 그 친구를 만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신학기가 되고 반편성이 바뀐 새로운 교실에서 짝으로 맺어진 인연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반짝이는 추억을 만들어 나갔다. 당시에는 그렇게 하찮았던 일들이 추억이 되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그 중에 아직도 삼삼하게 머릿속을 맴도는 그림이 있다. 종로구청입구 사거리다.
 학교가 있던 곳이 일본 대사관과 조계사 사이였음으로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면 유명한 해장국집이 있는 청진동 골목을 지나 종로1가(당시에는 무교동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정거장까지 나가야 했다.
 정거장 바로 앞에는 ‘무과수’라는 제과점이 있었는데, 지금의 위치로 보자면 신호등 뒤로 보이는 오피스텔 자리가 되겠다. 제과점치고 독특했던 이름 덕분에 친구와 낄낄대던 모습이 생생한데 결국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기억 속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집으로 가는 버스는 ‘무과수’ 앞으로 수시로 왔지만 바로 타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서로 다른 노선의 버스를 타야했기에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온갖 핑계를 대며 여러 대의 버스를 지나쳐 보내곤 했다. 가장 많이 써먹던 수법(?)은 차량 번호판의 네 자리 숫자로 일명 도리짓고땡이라는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재수가 좋은 날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타야할 차가 나란히 올 때가 있다. 이럴 땐 게임 오버다.
 열여섯 살의 봄은 그렇게 ‘무과수’가 있는 교차로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지나갔다.
 그렇게 단짝이던 친구도 지나갔다.
 진짜 친구 맞아?

 광화문은 오늘도 뜨겁다.
 교차로를 지나는 무수한 발걸음 속에서 행간은 실종되어 버렸고, 깃발보다 높이 펄럭이는 스피커 소리에 이순신 장군의 애국심마저 부끄러워진다.
 어디로 가는 진보이며 무엇을 지키려는 보수인지 원론적인 얘기는 차치하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모두를 위한 길이지 않을까 싶다. 서로의 방향이 다르더라도 상생의 길은 분명히 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교차되는 그 곳에 가면 상생의 지혜가 보인다.
 파란 사내와 빨간 사내의 관계를 유치원생도 알고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잊기 시작해 고3에 정점을 찍으며 상생에 대해서는 거의 치매 수준에 이르게 된다.
 홀로 살아남는 법.
 무한경쟁 시대라는 슬로건 아래 경쟁자들을 하나 둘 물리치는 비법을 전수 받는다. 이 때 이미 많은 경쟁 상대를 물리친 전적이 화려한 무림의 고수가 SKY에서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과외선생이라는 존재다. 비밀리에 활동하는 그들의 비법 가운데 백미는 속전속결 전법이다. 오로지 남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게 하는 게 지상 최대의 목표다. 개성은 점수 앞에서 묵살되고 친구라는 의미는 상생보다 경쟁에 가까운 이미지로 각인되어 간다. 관포지교라는 고사는 단지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는 단어일 뿐이다.
 전후세대를 이어 베이비부머들이 겪어 온 실상이다.
 배를 곯는 현실 앞에서 경쟁은 생존본능일 수밖에 없었다. 본능에 충실했던 그들이 본능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쟁취. 삶의 목적이 반드시 전리품일 필요는 없다. 분명한 건 다음 세대에 물려줄 덕목이 최소한 ‘홀로 살아남는 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소통이라는 패러다임이 대세를 점유하고 있는 게 아닐까. 경종을 울리지 못한다면 아주 나지막하게 자전거 벨이라도 울리고 싶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다음 세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연속된 사진들 끝에 한적한 월요일 오전의 광화문 풍경을 담아봤다.
 이제 좀 조용한 교차로를 찾아가 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중랑교를 건너 잠시 발을 멈췄다.
 파란 사내와 빨간 사내는 이 동네에도 있었으나 그녀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 Panasonic GH3
 렌즈 Canon J16a*8 b4
 이후 망우리 고개를 넘어 구리시에서 촬영한 교차로 컷을 첨부한다.
 이번 출사에서 새삼스레 얻은 것이 있다면 동네를 돋보이게 하는 건 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허락을 받지 못하여 사진을 실을 수는 없었으나 길에서 만난 몇몇 분들과의 수다도 즐거웠다. 허락을 받아내는 내공을 더 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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